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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3일을 돌아보다

마징가1234 2024. 9. 27. 01:59

  3일간의 장례를 마치고 어느때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같았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땐 난 항상 걸었다. 이 거리는 때론 초등학교다닐땐 소풍길이었고 , 증 고등학교 다닐땐 자전거길이었기에, 그 향수를 느끼고파 항상 걸었다. 그러나, 한 두 발짝씩 내딛는 걸음걸이로 점점  집이 가까워질때, 나는 웬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다. 집 문을 열면 항상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없을것이란 사실을 이제부터 받아들여야한다는 현실때문이었다.

중간지점까지 오니 어머니가 항상 밥먹듯이 다니시던 아구탕집이 보였다. 항상 노모의 손을 잡고 들락날락해서 그 집 사람들은 나의 얼굴이 익숙하다. 이제 나 혼자 갈일도 없으니 내 걸음걸이 뒤로 뒤로 멀어져가는 군산 아구탕집은 이렇게  작별을 고하는 셈이 되었다.  

아파트단지에 도착해서 1층 우편함에 꽂힌 우편물을 보고있자니, 슬픔이 올라왔다. 꽃혀있는 흥보물전단지를 뺏다가 다시 두었다. 어머니가 빼던것이라서 그대로 두고싶었다. 엘베를 타고 6층으로 올라오니 30년전 분양때부터 함께 해온 이웃집 아주머니가 생각이 났다. 어떤식으로든 돌아가신 사실을 알려드려야 예의인듯 싶었는데 최근 몇년간 두 분 사이가 좋지않았는지 내왕하지 않았던 사실때문에 나 또한 자연스레 다른사람들 입을 빌려 아시기를 바라면서 우리집문을 열었다. 휑하니 나타나는 거실바닥엔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모습이 없었다. 거실바닥에 잠시멈춰서서 AI 3D기술보다 내 머리속 상상속으로 4일전날로 되돌아가 그날 어머니가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그날따라 정돈된 이쁜옷을 입으시고 미소를 짓는 이미지를 갖다붙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눈물이 흘렀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게 어렵다.

돌아가신 그 날 어머니는 평상시처럼 Tv를 보고 계셨다. 난 서울에서 차를 끌고 내려온바람에 온 몸에 피로가 쌓여 한 숨자기를 스스로 채촉하고 있었기에 어머니와 눈 인사후 내 방에서 잠깐의 눈 을 부쳤다. 30분즈음 후, 다시 거실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대화를 건네기 시작하였다. 몇마디 나랑 주고받으시더니 냉장고의 문을 열고 베지밀하나를 꺼내 마실려고 하길래, "남기지 마시고 다 드세요!" 라는 일상적인 말 한마디 건네고 난 Tv모니터를 들고서 바뀌는 채널에 정신이 모아졌다.

그 순간 주변이 조용해 내 눈이 Tv에서 벗어나 어머니를 찾고 있었는데, 내  등 뒤 소파에서 내 가슴이 뛰며 크게 놀랄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항상 말 버릇처럼 우린 대화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많이 슬프겠소!"
어머니는 담담하게 "많이 살았잖아!"
"어머니! 돌아가시는건 안무서워요? "
난 무서울듯 싶은데 어머니는 한점 망설임 없이 말하신다.
"아니!"

1년전이든 2년전이든 또한 그 전이든 우린 대화속에 항상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혼자 말 버릇처럼
"소파에서 자듯이 죽는것이 복이야!"

어머니의 바램이기도 했구, 또한 누구에게나 바램이기도 하다. 인기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줄거리중에 갑자기 중반즈음 드라마속 어머니가 집에서 밥을 올려놓고 주무시다가 그대로 돌아가시는 내용이 있었다. 그 이후 드라마 전개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무슨 드라마가 앞뒤맥락없이 이렇게 전개되는지 의아해했는데 그같은 현실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똥이 나오는 타이밍을 알듯이 급체를 하면 위로 역류하여 토할것 같은 타이밍을 알듯이 숨이 멈쳐지는 그 순간을 직감적으로 모를일 없다.  어머니 또한 베지밀을 마시다가 직감적으로 느끼셔서 항상 바람대로 소파로 자리를 옮기지 않았는지 3일전 그날을 역으로 추측해 보았다.

소파뒤의 어머니의 눈 동자는 뒤짚어져 가고 있었고, 닫힌 입밖으로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갑자기 너무 놀라면서도 인지못했는데 후에 알고나니 아래에는 소변이 흐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겠다가 아니라! 돌아가시는중이구나가 예감되었다. 겪어본적없었기에 전화기를 꺼내 119에 도움을 요청했고 어머니의 가슴을 두드리며 "엄마! 엄마!를 계속 불렀다. 그러면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때 깨우지 말고 자연스럽게 눕혀드려서 자연사하시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있었다. 물론 사망관련 행정절차는 많이 번거로울테지만 어머니에게는 평화롭게 맞이하는 죽음 아니었겠는가!. 되돌려 그렇게만 할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것이다.

내가 가슴을 두드린게 마침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심장을 두드렸기에 자연스레 인공호흡했는지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정상으로 돌아오셨다. 119 구급대원이 10분안에 도착해서 멀쩡하게 앉아있는 어머님을 보시고 과연 지금 응급한게 맞는지를 나에게 눈으로 되묻고 있는것 같았다.

난 순간 결정의 기로에 섰다. 어쩌면 이 결정이 내 인생의 최대실수로 평생 간직해야할 갈림길이었는지 모를일이다. 머리속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그냥 119를 되돌려 보낸다  나머지 하나는 이왕이렇게 된거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자 였다.

누구에게나 선택을 하라면 방금전까지 위급했었으 니 후자를 택했을것이지만, 난 119를 그냥 돌려보낼까 말까에서 그 찰나에  왜 그렇게 번민했어야 했는지를 결과론적으로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구해야 하는일이 병원에서 일어났으니 말이다.

응급대원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인근응급실에 연락해 조치를 취하고 의료진에게 어머니를 건네고 돌아갔고, 응급실 의료진들은  어머니의 피부가 옴으로 얼룩져있는걸을 보고 격리병동에 대기시켜놓고서 피검사부터 여러가지 체크를 해보겠다고 하고서 우리를 대기시켜놓았다.

병실에 둘만 있을때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다는 하소연을 짦은 간격을 두고 말씀하셨다.
"허리아파서 앉게 해주라.. 그래 " 그러다가도
" 허리아프다 눕게해주라.. 그래"
의료진이 검사준비를 위한 시간동안 어머니와 난 계속 일으켜 세웠다가 눕혔다가를 반복했다.
어머니는 톤이 높은 목소리로
"이렇게 죽나보다" 라고 옮조렸다. 나도 지금부터는 어머니말씀이 유언이겠거니 귀를 쫑긋세워두었으나 어머니는 당장의 허리아픔에 정신이 없으셨다. 이윽고 의료진이 들어와 환자복으로 갈아입힐때 그때서야 소파에서 누신 소변이 보였고, 그 옷을 벗기고 마침 도착한 누나가 가져온 기져귀를 입히면서 어머니의 틀니를 빼야했었는데 어머니의 입이 안벌어져 강제로 벌려빼내는일이 한동안 있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정신줄을 놓으신것 같았다. 서양의학이라는건 우리몸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고치는 의술이라서 때론 강압적이지 않던가!.우리는 의료진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이를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다. 의로진의 손에 어머니를 맡기고  누나와함께 한숨돌리려 병원옆 맥도날드 매장에서 커피마시던찰나에 보호자 찾는다는 연락이와서 가보니, 어머니위에 한사람이 앉아서 가슴을 두드리는 인공호흡하고 있는게 보였다. 어머니 몸에 한줄기 생명을 연장해보고자 하는 의료진들의 바쁜 손길들이 그땐 무자비하게 움직이고 있는듯 보였고 그 무게에 짓눌려있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차마 쳐다보기가 안쓰러웠다.

119 응급대원을 그냥 돌려보냈어야 하는 알수없는 번민을 왜 했는지를! 그래서 병원까지 온것을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해야했는지를 설명해주는 장면들이었다.

의료진은 어머니의 인공호흡이 30분이 지나도 개선이 없으면 사망진단을 내릴수밖에 없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찰나에 찍은 심장초음파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정상인이라면 500안팎의 수치를 보여야하는데 그 10배의 크기로 부풀어져 있었다는 의료사실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사망원인은 심장 부전
:심장의 수축 운동이 비정상적이어서 신체의 각 부위로 피를 충분히 보내지 못하는 병적인 상태. 호흡 곤란, 부기 따위의 증상 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머니는 전해지는 심장이 멈춰지는 직감을 하셔서 소파로 이동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본이 아니게 내가 소파에서 심장을 두드려 잠시소생되었고 집에서 맞이하지 못한 자연스런 죽음을 의료진 앞에서 강제적으로 맞이한 모습으로 운구차에 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죄송스러운 맘에 한없는 눈물이 흘렀다..  

딱 10년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폐가 약해 호흡곤란이 문제여서 병원신세를 한동안 지게 되었는데, 병원을 가보면 아버지는 침상에서 내려가고싶은걸 안된다고 말리는 힘겨루기가 일상이었다. 철처히 아버지의 입장이 아닌 의료진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대했던것이 많이 후회되었었다. 내려가고싶었으면 내려가게 하는것이 나는 뭐가 두려워서 그걸 못하게 막았을까!. 결국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그 끝은 똑같다는걸 알면서도 서양의학에 맞추다보니 아버지를 너무 힘들고 불쌍하게 보내드린 후회감만이 평생 못 잊을 한으로 남아있었는데, 어머니또한 그렇게 보내드리는것이 되돌릴수없는 속절로 남는것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돌아간다면 소파로 이동해서 죽음을 맞이하고자하는 어머니의 본능을 그대로 존중해서 아무런 터치없이 자연스레 돌아가시는모습을 지켜봤더라면 그 몸에 무서운 손길이 오는것이 없지 않았겠는가라고 난 후회하고 있는것이다

운구차가 오기까지 누나와 난 시신을 지키고 있었고 난 얼굴까지 덮혀져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안볼수가 없었다. 누나는 말렸다. 예의가 아니면서도 그 인상이 트라우마처럼 영원이 괴롭힐거라고, 난 개념하지 않았다. 내 어머니의 트라우마가 두려운가! 아직도 체온이 꺼지지 않은 지금 이시간이 만져볼수 쳐다볼수 있는 마지막시간 아닌지!. 그래서 얼굴을 들쳐보니 인공호흡기가 빠진 자리에 지그러진 얼굴모습과 피자국이 남아있는 모습이 각인되었다.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