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있는집은 지어진지 30년이나 된 아파트다. 처음 분양때부터 지금까지 쭉 살아온 거주공간이라는데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 공간에서 나는 대학도 갔고, 할머니,아버지 그리고 지금 어머니까지 보내드린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선 6층 할머니하면 같은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다. 그래서였는지 내 뒤로 살며시 어느분이 오셔서 어머니 안부를 물으셨다.
" 그날 응급차 나가는것 봤는데.어머니는 어때여?"
" 어머니! 돌아가셨어요" 마치 가벼운 예능처럼 물었는데 진지한 다큐로 대답하는것마냥 목소리톤에서 차이를 느꼈다. 그러다보니
적지않게 놀라시는 표정이었다. 차에 짐을 싣느라고 몸을 돌리는바람에 뒤에 계신분을 시야에서 잠깐 놓쳤는데, 다시 돌아보니 눈물을 참고 계신게 보였다. 갑자기 나도 울먹여졌다. 내가 그 분을 위해 위로의 말을 해야할듯 싶은 환경이 벌어졌다. 다급히 말을 꺼냈다.
"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주무시듯이 돌아가셨어요 "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었다. 죽음이 어머니에겐 축복이였다라는..
그 분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사람들 시선속엔 내 손을 잡고 다니는 어머니의 그림이 있었다. 한 두분 더 물어오시는분들이 계셨다. 그러다보니 난 자연스레 같은 동 2층에 살고계시는 어르신에게 이 사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도 맘이 불편했다. 같이 산책다니며 유일하게 오고가며 차마시며 이야기 나누시던 그 2층어른신도 거동이 불편하셔서 따님집에 가 계신듯 보였다. 최근 잊혀질만큼 마주친일이 거의 없었기에..
우리집 바로 옆집은 분양때부터 이웃이었다. 엘베에서 문이 열리면 딱 두집뿐이니, 이런이웃을 30년지기라고 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그 긴 시간동안 옆집이웃으로서 그 분은 때론 좋은이웃이다가도 때론 나쁜이웃이기도 했다. 너무 가까이 살면 싸우다가도 웃고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사는게 다 그런거니까!.
갈등의 발단은 나였다.
옆집 아주머니에게도 3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 중 둘째가 나랑 나이가 비슷해서 혼인을 맺게 하고픈 맘이 옆집 아주머니에게는 강하게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어머니는 거절하셨다. 그 서운한 맘이 없진 않았을것이지만, 시간이 지나 아주머니 따님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명절때 오고가며 보여지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것과 달리 나는 미혼으로 50대까지 왔으니 어쩌면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살짝살짝 꺼내기 쉬운 복수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어머니가 누구의 말을 전하듯이 말씀하셨다.
"신발만 보면 그 사람이 무슨일을 하는지를 안다고 하네" 맞는말이긴 하지만 난데없이 평소 어머니 화법이 아니었고 그 문장의 뉘앙스가 긍정적인것이 아니라서 기억할수밖에 없었다. 당시 난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면 신발에 먼지와 갖은 이물질이 붙어있었고, 그 신발을 신고 또 작업을 나가곤 했으니 그 흔적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누가 그 말을 왜 했는지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어느덧 두 분이 나이를 훌쩍 먹어 함께 아파트내 복지관에 자주 마주하실때즈음 어느 부모나 자식을 자랑하고싶은맘이 있는법이라서, 누가 말하면 그걸 폄하하는 대화가 오고갔던것으로 추측했다. 그것이 두 분 사이에 갈등이 빈번하게 만들었고 그 이후론, 마주치면 목례정도만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2층어르신과 달리 관심이 없더라도 주변사람들때문에 자연스레 알게되실거라 여기고 모른채하고 싶었을뿐이었는데 누나들 생각은 달랐다. 과일 선물하나를 준비해서 갖다드리라고 하는바람에 갖다드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서로 이웃으로서 좋은일도 있고 나쁜일도 있었겠지만 이젠 다 지난일이니 서운하신게 있으셨다면 너그러이 풀어서 맘 편히 지내시길 바라는 맘에서 건네는 선물은 의미가 있을듯 싶었다
설령,내 생각과 다르다 한들, 그건 이제 그 사람 그릇의 몫일테니까 공은 이미 넘어갔으니 나의 도리는 끝난셈이다.
ps. 3일후 외출하시다가 열린문으로 들어오셔서 어머니 사별에 대해 같이 공감하면서 그분은 다시 좋은이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