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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

마징가1234 2024. 9. 29. 16:16

  어머님 이별소식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지만, 6명의 딸 중에 첫째딸(=큰누나)은 장례식참가하기엔 미국에 살아서 힘들어 보였다. 마침, 큰누나의 첫째가 결혼날짜를 잡아서 큰누나가족모두 인사차 한국방문을 예약해놓은터라서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서거소식에 귀국을 재촉하기보다는 어차피 갈건데 그때가나 지금가나를 망설이게 하는 선택을 하게 할수도 있었지만, 도착날짜를 계산해 보아도 장례후라는것을 인지함에도 큰누나는 귀국을 선택했다. 우리사회의 세월호나 이태원참사와 같이 가족이 떠난 상처를 보듬는건 그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들끼리 대화와 공감을 지속적으로 나누는 방법이 가장 최선이다.  큰 누나의 도착은 다른 누나들과 나에게 어머니의 경험을 같이 나누면서 상실감을 치유했다는데 그 의미가 컸다.

가족이 모이면 어머니와의 기억을 공유하며 웃고 울면서 맘을 치유하는게 일과인지라 시종일관 누나의 말에 맞장구치며 웃는얼굴을 보면서도 살아계실때 치유의 역활을 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어느날 문득 내게 말씀하셨다.
" ㅇ식이가 나쁜놈이여 " ㅇ식이는 큰누나의 남편이었다. 큰누나가 어머니를 뵙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지 몇 시간전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맏사위를 욕하는게 심상치않음을 느꼈다. 어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큰 누나가 한국에 나올때마다 맏 사위가 지속적으로 만나던 여인이 있었다고 큰 누나가 어머니에게 토로했었던 모양이다. 삶의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걸 토로하고 이야기를 나눌 대상은 급이 존재한다. 항상 동생들에게 첫째로서 행동하던 누나에겐 그 고민을 치유하고싶은 대상은 어머니만한게 없었을것이다.

그 여인의 존재를 알았을때의 큰 누나의 심정은 이루 말할수 없이 무너졌을건 안봐도 뻔한일인데 그걸 어머니에게 나누면서 위로를 받고자 했을건 안봐도 뻔한일이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 또한 맘이 불편했을터인데 세상 어디가서 그런이야기를 주고받겠는가!. 어머니도 어머니의 사진을 항상 액자화해서 머리맡에 놓아두셨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시집살이로 힘들때, 어머니에 가서 하소연하니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하셨다

" 너는 이제 그 집 사람이니, 죽겠으면 그 집에서 죽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했다.

나의 할머니는 동네 호랑이였다. 어려서 놀다가도 내가 불리하면 난 동네형들에게 말했다. "할머니에게 일러버린다!?"그럼 동네 형들은 내가 잃었던 구슬을 다 돌려주곤했다.

6.25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보릿고개를 2남1녀의 식솔을 혼자힘으로 념겨왔으니, 그 생존 강인함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아들을 못 낳아서였다. 첫째 둘째 세째까지는 할머니의 이쁨을 받았다고 하고, 넷째부터는 구박을 받았다하니, 고부갈등은 내가 성장할땐 일상이었다. 가끔 드라마로 고부갈등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나는 재미를 못느꼈다. 그 고부갈등의 정도가 나의 일상보다 못했고, 드라마의 귀결은 한번 크게 서로 눈물흘리며 갈등이 해소되는 스토리지만 갈등의 본질은 원수로 나아가 죽을때까지 쳐다보지 않는거였니까!.

"ㅇ식이가 나쁜놈이여"  말 한마디는 큰 누나에게 크게 위로가 되고도 남았을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듣고싶은 말로 치유를 안해주신 서운함이 있었을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내가 도둑질을 해도 주변사정 안보고 내 편을 들어주는게 치유의 시작이라서 그게 한번 어머니의 맘에 업그레이되어 자리를 잡았으니
" ㅇ식이가 나쁜놈이여" 만큼  더 나은 치유는 없었을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