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치매

마징가1234 2024. 10. 14. 23:20

  치매의 의학적인 현상은 기억력 상실이다. 어떤 연상작용으로 다시 기억한다는 건망증과 차이가 있다.  치매는 그냥 기억이 소멸해 사라지는것이다.
극단적으로, 밥 씹어먹는 기억조차 없어져서,  그냥 굶어죽게되는게 치매다.

우리 인간은 뇌가 기억하는것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그 기억이 소멸해간다면 행동의 범주도, 말의 범위도 점점 줄어들게 되는것이고, 그래서 기억하는 행동과 말만 반복하게된다.

  누가 집에 찾아오면, 나를 가리켜 " 우리 아들이여! " 라고 항상 반복하는데, 기억이 사라지고 사라져가도 아들만은 기억하고 있겠다는것이 뒤늦게 감사할따름이었다.

어느날, 누나집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밤늦게 침상에 누워있는 사위를 보고서  "외간남자가 집에 있어 ! 너 바람폈지! " 라고 말하는 바람에 사위가 당황해하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다.  

  소멸해가는 기억속에 [바람피다]라는 기억은 어떻게 자리잡힌 것일까? 오래전 드라마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이 기억속에 남아 있었다.세 모녀의 다른 삶을 다룬 드라마지만, 한결같이 여자의 일생에서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바라보고 하는건 시대를 초월하는 항상 존재하는 서사다. 어머니에게서 바람피다의 기억은 아마도 사위가 바람피었다는 사실이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들었던  기억일것이다.  그 외에 어머니 인생에서 바람피었다는 사실은 드라마나, 옆집이야기만이었다. 그 사위들이 찰나 외도한 사실이 기억속에 크게 각인되었다면, 그래서 치매때문에 기억이 사라져가는 와중에서도 바람피다의 기억이 오래동안 남아있었다면, 딸의 상실감과 같은 아픔을 어머니로서 쉽게 지울수가 없었던 탓이 클것이다.

  초등학교때 같은반 아이가 나를 불러서 놀리는 바람에 한바탕 길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내가 힘이 딸려 아래에 깔려서 버둥대고 있는데, 갑자기 큰 힘이 그 친구를 들어올려 내동댕이 쳐버렸다. 일어나서 보니 우리어머니였다. 그 아이의 멱살을 잡고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슈퍼맨같은 모습을 잊지 못한다.

태아는 어머니 배속에서 10개월을 함께 지내다 세상에 나온다. 출산의 고통을 수반한다지만, 이미 10개월부터 몸의 일부로서 희노애락을 같이 공유한다.  그래서 아이가 맞고있는 모습에 피가 꺼꾸로 솟아 그냥 쳐다볼수없는것이고, 같은 맥락으로 딸의 상실감을 묵묵히 자기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