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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

어머님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는게 익숙해지다보니, 연극배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용카프리오 애로배우로 세상에 이름을 얻는것도 나름.. 그러고나서, 한번 즈음 되묻게 된다. "왜? 슬플까? " 일요일 오후 가을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거실에서 먼길 가실려고 예쁜 옷을 입고 손톱을 정리하시고, 항상 드시던 베지밀 하나를 마지막으로 드시고나서 였어요. 소파로 오셔서 항상 말씀하셔듯, 사람은 소파에서 잠자듯이 가야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소파로 돌아오셔서 열반에 드시는데, 제가 깨웠죠. 아냐 조금더 .. 하시다가 3시간후에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숙명이구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소풍의 끝자락에서 모든 사람이 어머님과 같은 열반을 부러워하세요. 부러우면 닯고 싶은법이라서 나도 ..

카테고리 없음 2024.10.19

치매

치매의 의학적인 현상은 기억력 상실이다. 어떤 연상작용으로 다시 기억한다는 건망증과 차이가 있다. 치매는 그냥 기억이 소멸해 사라지는것이다. 극단적으로, 밥 씹어먹는 기억조차 없어져서, 그냥 굶어죽게되는게 치매다. 우리 인간은 뇌가 기억하는것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그 기억이 소멸해간다면 행동의 범주도, 말의 범위도 점점 줄어들게 되는것이고, 그래서 기억하는 행동과 말만 반복하게된다. 누가 집에 찾아오면, 나를 가리켜 " 우리 아들이여! " 라고 항상 반복하는데, 기억이 사라지고 사라져가도 아들만은 기억하고 있겠다는것이 뒤늦게 감사할따름이었다. 어느날, 누나집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밤늦게 침상에 누워있는 사위를 보고서 "외간남자가 집에 있어 ! 너 바람폈지! " 라고 말하는 바람에 사위가 당황해하고 한..

카테고리 없음 2024.10.14

후회하다.

어머님이 소변이 샌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본인 스스로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계시다는게 우리의 맘은 무거워졌다. 낮에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지 4년째지만, 그 단계를 너머 이젠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되는게 아닌지에 관해 대화가 오고갔다. 자주 동물의 왕국을 봤다, 야생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게 동물에겐 선택지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마무리하는게 인간도 가장 최선이 아닌지를 돌이켜본다. 부모의 거동이 불편해지면 돌봄이 필요한데,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우리에겐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만사 모든일을 제쳐두고 집안에 같이 지낸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라서. 그럼에도 어머니가 편히 살다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 드리고픈게 내 바램이었다. 만약 내가 요양시설에서 보호를 받는 선택을 하면 내 행동과 사고는 관리..

카테고리 없음 2024.10.12

현명함!.

10년전,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상태가 마지막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병원에 입원 퇴원을 밥먹듯이 하다보면 지켜보는 가족이 지쳐가는 그 이면에는 돈이 존재한다. 처음이야 "내 부모니까"!라는 생각에 맘이 움직이지만 한 두번이 반복될수록 "내가 아니어도.." 그걸 지나면 "네가 좀 해라"로 바뀌어간다. 형제끼리 다툼이 시작되는것은 슬플것도 없는것이 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자! 인간의 본성인것이다. 병원이라는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 또한 그 속내는 상업공간이다. 의료기술자의 집합체라서, 노화로 생긴 건강을 회복시키지는 못해도 그들의 기술로 연명할수는 있는곳이다. 그러니, 부모가 하루라도 더 살아가길 바라는 우리들 맘이 병원과 만나면 생은 길어진다.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한 해 배당금이 수십..

카테고리 없음 2024.10.01

첫째 딸!.

어머님 이별소식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지만, 6명의 딸 중에 첫째딸(=큰누나)은 장례식참가하기엔 미국에 살아서 힘들어 보였다. 마침, 큰누나의 첫째가 결혼날짜를 잡아서 큰누나가족모두 인사차 한국방문을 예약해놓은터라서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서거소식에 귀국을 재촉하기보다는 어차피 갈건데 그때가나 지금가나를 망설이게 하는 선택을 하게 할수도 있었지만, 도착날짜를 계산해 보아도 장례후라는것을 인지함에도 큰누나는 귀국을 선택했다. 우리사회의 세월호나 이태원참사와 같이 가족이 떠난 상처를 보듬는건 그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들끼리 대화와 공감을 지속적으로 나누는 방법이 가장 최선이다. 큰 누나의 도착은 다른 누나들과 나에게 어머니의 경험을 같이 나누면서 상실감을 치유했다는데 그 의미가 컸다. 가..

카테고리 없음 2024.09.29

30년지기 옆집아줌마!.

내가 살고있는집은 지어진지 30년이나 된 아파트다. 처음 분양때부터 지금까지 쭉 살아온 거주공간이라는데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 공간에서 나는 대학도 갔고, 할머니,아버지 그리고 지금 어머니까지 보내드린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선 6층 할머니하면 같은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다. 그래서였는지 내 뒤로 살며시 어느분이 오셔서 어머니 안부를 물으셨다. " 그날 응급차 나가는것 봤는데.어머니는 어때여?" " 어머니! 돌아가셨어요" 마치 가벼운 예능처럼 물었는데 진지한 다큐로 대답하는것마냥 목소리톤에서 차이를 느꼈다. 그러다보니 적지않게 놀라시는 표정이었다. 차에 짐을 싣느라고 몸을 돌리는바람에 뒤에 계신분을 시야에서 잠깐 놓쳤는데, 다시 돌아보니 눈물을 참고 계신게 보였다. 갑자기 나도 울먹여졌다. 내가..

카테고리 없음 2024.09.28

장례 3일을 돌아보다

3일간의 장례를 마치고 어느때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같았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땐 난 항상 걸었다. 이 거리는 때론 초등학교다닐땐 소풍길이었고 , 증 고등학교 다닐땐 자전거길이었기에, 그 향수를 느끼고파 항상 걸었다. 그러나, 한 두 발짝씩 내딛는 걸음걸이로 점점 집이 가까워질때, 나는 웬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다. 집 문을 열면 항상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없을것이란 사실을 이제부터 받아들여야한다는 현실때문이었다. 중간지점까지 오니 어머니가 항상 밥먹듯이 다니시던 아구탕집이 보였다. 항상 노모의 손을 잡고 들락날락해서 그 집 사람들은 나의 얼굴이 익숙하다. 이제 나 혼자 갈일도 없으니 내 걸음걸이 뒤로 뒤로 멀어져가는 군산 아구탕집은 이렇게 작별을 고하는 셈이 되었다. 아파트..

카테고리 없음 2024.09.27